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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 (1) 19세기 중국, 일본

매 석 2023. 9.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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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동아시아

 

동서양 세력 균형의 거대한 역전이 발생한다.

이를 대전환의 시대라고 부른다.

서양 세력이 바다를 통한 무역로를 개척하고, 또한 석탄과 기계를 사용한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다. 이는 증기기관차, 증기선 등 다양한

운송 수단까지 발전하며 동 서양의 균형이 뒤집히게 된다.

1775년 경 동양의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전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생산의 4/5를 차지할 만큼 균형의 차이가 있었다.

이 무렵 서양은 기독교 문화권으로, 동양에게 무역로를 통제당해

세력이 약했고, 이는 대전환의 시대를 통해 균형이 바뀌기 시작한다.

 

중국(청)

 

1644년 명나라 멸망 이후, 청이 중국을 지배했다.

19세기 초 전세계 무역량의 1/3을 차지할 만큼 엄청난 국가였다.

광동 무역 체제 등의 중화의식을 바탕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로

영국과 차, 도자기 ,비단 등을 은과 교환하곤 했다.

하지만 영국의 적자가 지속되었고, 이는 아편 밀매를 통해 해소하려 했다.

결국 아편 중독자로 인해, 중국이 아편을 불 태우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제1차 아편전쟁이 1839년 일어났다.

이는 청의 패배로 끝이 났고, 결과적으로 난징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결과 개항, 홍콩 할양, 배상금 지불 등을 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아편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으로 구성된 인원에게

패배하였고, 텐진 조약,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 바다와 내륙 모두 개방하게 되었고,

서양 세력의 본격적인 중국 진출이 시작되었다.

추가로 이 불평등 조약을 중재해준다는 몫으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획득했다.

전쟁 이후 중국 내에서는 양무 운동, 변법 자강 운동 등 다양한 정치 제도 개혁,

부국 강병 추진 등이 일어났지만 모두 실패했다.

 

일본(에도 막부)

이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도한 임진왜란(1592~1597)로 인해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된다.

봉건제로 쇼군과 다이묘 등으로 통치를 했고, 왕은 상징적으로 큰 힘을 가지지 못했다.

일본 또한 처음에는 쇄국 정책을 펼치며, 네덜란드에만 데지마라는 인공 섬에서 교류를 했다.

이후 아편 전쟁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미국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하여

1854년 미일 화친조약과 1858년 미일 통상 조약을 체결하며 개항을 시작했다.

이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했다.

한편 일본 내에서는 개항을 반대하는 세력이 막부를 타도하고 '존왕양이'를 시도했다.

결국 막부 정권은 몰락하고, 1868년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긴 했지만,

서양을 배척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봉건제, 신분제를 폐지하고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도입했다.

또한 부국강병, 국민 의무교육 실시, 신도 국교과, 입헌 군주제 등

다양한 변화를 통해 근대화를 추구했다.

그중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개화론, 탈아입구론을 펼치며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10000엔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진이다.